은비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걸어온 길 -주로 병력-을 알림으로써 ‘엔젤만 신드롬 ’이라는 행복한 증후군을 앓고 있는 환우와 가족 , 관심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고 , 우리나라의 엔젤만 신드롬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질문서가 되는 글이었으면 합니다 .

2004 년 6월 은비는 만 19세를 지났습니다.

열아홉 번째 생일을 며칠 넘긴 어느 날 일본에서 처음으로 엔젤만 신드롬 (Angelman Syndrome: 다음부터는 AS라고 쓰겠습니다 )이라는 질환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.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는 달리 은비의 행동이나 특성들이 아무래도 뇌성마비가 아니라 엔젤만 신드롬에 가까운 것 같다는 것이 그곳 선생님들의 조심스러운 소견이었습니다 .

엔젤만 신드롬 !

우리 부부는 난생 처음 듣는 질환이었습니다 . 그러나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AS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고는 ‘악 ’ 소리가 나도록 경악했습니다 . 판단 증세가 마치 지금까지 은비가 겪은 것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착각이 들 만큼 너무도 흡사했기 때문이지요 . 심지어는 사이트에 올려진 아이들의 표정이나 웃는 모습들이 은비의 어린 시절 모습과 너무나 똑같아 보였습니다 . 검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우리 부부는 이미 은비는 분명히 AS일 것이라는 확신감을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. 비로소 은비에 대해서 진정한 이해를 할 수가 있더군요 .

AS 는 염색체 결실로 인한 유전질환의 하나입니다 . AS의 특징 중의 하나는 이 병이 대부분 모계 유전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입니다 . 이 때문에 혹시라도 부모가 상처를 받지나 않을까 염려하며 이야기해주는 선생님의 태도는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러웠습니다 . 그러나 선입견이나 자존심 때문에 진실을 알기를 주저한다면 그건 아이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. 아이의 상태를 직시하고 정확한 병명을 아는 것이야말로 치료를 위한 첫 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. 유전자치료를 비롯한 생명공학 분야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에 비록 지금은 별다른 치료 방법이 없을지라도 다가올 미래의 어느 날인가는 반드시 그 치료법도 개발되고 발견되리라 믿습니다 .

AS 는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장애를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. 은비의 경우 심각한 위 식도 역류현상으로 수술을 받았으며 , 폐렴 , 중이염 , 편도선염 등 각종 병치레를 반복해 왔습니다 . 경련성 사지마비라는 진단을 받을 정도로 근 긴장도가 심해 운동성에 있어서도 정상적인 발달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. 빈번한 경련과 지능장애 , 언어장애 , 심한 척추 측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장애를 보였습니다 .

병명을 알 수 없어 뇌성마비로 진단받을 수 밖에 없었던 은비는 척추의 심한 불균형으로 인하여 우리나라에서 받기 힘들었던 수술을 일본에서 받게 되면서 지금까지 알 수 없었던 아이의 많은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.

지금까지 은비는 지체 (정확히 말하면 뇌병변 장애 )와 정신지체에서 각각 1급 판정을 받은 중증 뇌성마비 장애아였습니다 . 이제 1급 중증의 ‘엔젤만 신드롬 ’ 환자로 바뀌어야겠지요 .

돌이켜보면 끝없이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 하는 아이를 때로는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시간들은 무기력한 자신과의 기나긴 싸움이기도 했습니다 . 단순하게 체념하고 운명에 맡기기보다는 늘 맞서서 극복해보려 했지만 아이의 고통을 전부 덜어 줄 수는 없었습니다 . 그럼에도 방긋방긋 웃어주고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는 아이의 모습에서 경이로움을 느껴온 것도 사실입니다 .(비록 그것이 AS의 한 특성이기는 하지만 )

지금까지 해온 요육과 운동치료 등을 계속해야겠지만 ‘치료 ’라기 보다는 AS를 고려한 좀 더 새로운 방법으로 장애를 극복해나가는 인고의 과정이 되겠지요 .

한편으로는 AS를 앓고 있을 어린 아이들이 은비와 같은 길을 걷지 않기를 바랍니다 . 은비는 매우 중증의 AS 환자라고 생각됩니다 . 정도의 차이가 심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AS 환우들이 은비와 같지는 않을 것입니다 . 이 글이 아직까지 아무 것도 모른 채로 힘들게 살아가고 있을 또 다른 환우들과 가족들에게 병을 이해하고 대처해 나가는데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