1985 년 6월 21일 (이날은 하지였다 ), 정오에서 1분 모자란 11시 59분에 은비는 세상에 첫 얼굴을 내밀었다 . 하지 날 정오라니 , 남들은 수술을 할 경우 좋은 시까지 받아놓고 낳는다는데 임신중독증으로 그 전 날 입원했던 까닭에 그런 선택권이 없었다 . 혈압은 상승하고 단백뇨의 수치도 증가하면서 시각을 다툴 만큼 갑자기 상태가 악화되었던 것이다 . 예정일을 3주 앞두고 일어난 일이었다 .

그때 너무 부은 탓인지 배는 쌍둥이라도 가진 것처럼 엄청나게 불렀었지만 막상 태어난 아이는 2.78Kg의 자그마한 여자 아이였다 . 그런대로 태어나서 2주 간은 별다른 이상 증후 없이 지나갔다 . 다만 한 가지 애를 먹었던 일은 아이가 젖을 잘 빨지 못했다는 것이다 . 하지만 아이를 낳고 거의 열흘 가까이 젖을 먹일 수 없었던 사정을 감안한다면 굳이 이상하게 느낄 일도 아니었다 .

보름쯤 지나서 아인 갑자기 자지러지듯이 울면서 토하기 시작했다 . 단순한 소화불량으로 보기엔 너무 지속되는 기간이 길었다 . 병원을 이곳 저곳 데리고 다니면서 진료도 받아 보았지만 그때까지는 뚜렷한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. 아인 자다가도 코나 입으로 먹은 우유를 올리기 일쑤였는데 그럴 때마다 마치 비명에 가까운 분절된 울음소리로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곤 했다 . 힘들게 먹은 우유를 그렇게 다 올리고 나면 다시 배가 고파서 보채고 울어대는 악순환의 나날들이 거듭됐다 . 태어나서 한 달이 다 되어갔지만 아이의 체중은 그다지 변함이 없었다 .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잠도 거의 자지 못하는 상항에서 발육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건 기대하기 힘든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.

결국 태어나서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(생후 1개월 ) 아인 유문협착증 (pyloric stenosis : 유문이 좁아져서 음식이나 우유가 원활이 내려가지 못하면서 영양 공급에 지장을 초래하는 증상 )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는데 치료 방법이라곤 수술밖에 없다고 했다 . 수술을 시켜주지 않으면 영양장애를 일으켜서 생명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. 진단 받기까지는 쉽지 않았지만 수술은 비교적 간단하게 끝났다 .

같은 병으로 수술을 받았던 옆 병실의 사내 아이도 수술 전 기아 상태의 아이 같았던 모습이 하루하루 놀라운 속도로 좋아지고 있었기 때문에 은비에게도 같은 변화를 기대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.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수술을 받고 나온 아이는 여전히 구토가 멈추질 않았다 . 링거만 맞고 있는 상태에서도 시시때때로 올리기 다반사였고 그런 아이의 특이성 때문에 다시금 간호사들이 상주하면서 예의 주시해서 관찰하는 병실로 옮겨지게 되었다 . 의심이 가는 병에 대한 여러 가지 검사가 이루어졌지만 검사에서 딱히 이상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.

결국 아이는 조산으로 인해 위의 형성이 불완전해서 우유를 먹으면 위의 연동 운동 시에 위의 윗부분이 닫히지 못하고 그냥 튀어나오는 위 식도 역류 (gastroesophageal reflux)라는 진단이 다시 내려졌다 . 치료 방법이라곤 먹인 후 아이를 눕히지 말고 충분히 소화되는 시간 동안을 앉혀 놓거나 세워 놓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. 더욱이 아인 우유에 대한 소화 장애 (나중에 그것이 우유 알레르기라고 들었다 )를 나타내고 있어서 될 수 있는 대로 분유를 빨리 끊고 이유식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수술한 선생님의 말씀이었다 . 그렇게 지내면서 적어도 돌은 지나야만 모든 기능이 정상적으로 돌아올 수 있을 거라는 것이었다 . 태어나서 겨우 두 달도 안 된 아이를 눕히지도 말고 늘 안거나 세워 놓아야만 한다는 것과 젖도 제대로 빨지 못하는 아이에게 분유도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끊어야 된다고 하는 건 우리 부부에게도 너무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.

퇴원 후에도 아인 자주 올리곤 했다 . 잠이 워낙 깊게 들지 못하는 까닭도 있었겠지만 자면서도 올리는 증상들은 아이의 수면을 방해했다 . 물론 이때 그대로 눕혀서 재웠던 것은 아니었다 . 거의 90도에 가깝게 경사를 만들어서 아이를 눕히곤 했었다 . 혹은 이동식 침대를 이용하여 각도를 올려서 재우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. (사실은 거의 잠을 자지 않았기 때문에 먹인 후 주로 품에 안고 있었던 시간이 제일 길었던 것 같다 )

아인 자다가 자주 놀라서 깨곤 했는데 이 때에 주로 두 팔은 크게 벌리고 (마치 모로반사의 형태를 띠었다 ) 놀란 표정으로 깨어났으며 대부분 우유를 올릴 때가 많았다 . 이것이 경련의 한 형태였는지는 지금도 확실치 않다 .

자주 토하는 아이에게 엎어서 재우는 방법을 많이 권유 받았지만 아인 엎어만 놓으면 죽어라 버팅기고 코를 박고 몸부림을 쳐댔기 때문에 실제로는 엎어서 재울 수가 없었다 . 엎드려 있는 자세만큼이나 업히는 것도 싫어해서 세 살이 넘도록 아이를 늘 앞으로 받쳐 안고 다녀야만 했다 .

선생님의 권유대로 우유는 일찌감치 다른 이유식으로 대체해 버렸는데 유난히도 입맛이 까다로운 탓에 새로운 걸 온전히 한 통 다 먹여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. 이땐 무엇이든 아이가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구해서 먹이기가 급급했던 시기였다 . 아인 토하기도 자주 토했지만 토하는 습관이 들다 보니 먹는 걸 거부하는 버릇이 생겼다 . 이 때문에 경련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네 살 무렵의 체중은 간신히 11Kg를 조금 넘었던 것이 고작이었다 . 저 체중에도 불구하고 아빠의 체격을 닮은 탓인지 키는 평균보다도 큰 편이었다 . 마르고 긴 체형으로 양쪽 어깨는 딱 벌어져 있어서 마치 운동 선수 같은 느낌을 주었다 . 때문에 지금도 그렇지만 여자 아이 같은 느낌이 거의 없었다 .

생후 일 년까지는 정말 엄청나게 토해서 늘 턱받이를 착용해야만 했는데 하루에 열 장 넘게 사용한 적도 자주 있었다 .

설사 (감기에 걸렸을 때 먹이는 항생제는 필히 장에 부담을 주었다 . 항상 감기 끝에는 장염이나 설사를 동반하기 마련이었다 )와 변비가 번갈아 계속되었고 관장을 시키는 횟수도 잦았다 .

먹는 게 부실했던 탓인지 잔 병치레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.

백일이 지난 다음 날 폐렴으로 입원을 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여러 번 폐렴으로 고생하였다 . 이 때 폐렴은 곧 중이염이나 축농증으로 진행되기도 했다 . 잦은 폐렴 덕분에 거의 뭉치에 가까운 X-RAY 사진을 계속해서 찍을 수 있었는데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진행되었던 척추 측만도 비교적 일찍 발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.

돌이 지나면서 정말 기적처럼 아이의 구토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.

우유 대신 두유로 바꾸고 혹은 부드러운 빵 (주로 카스텔라 )이나 슬라이스 치즈로 식사를 대신했다 . (지금까지도 이 패턴은 변하지 않았다 ) 밥에 대해선 유난히 거부감이 심해서 처음 밥을 재대로 먹여본 것은 열 살 무렵이었다 . 그것도 아주 소량으로 시작해서 길들여 나갔다 .

은비는 먹을 때마다 혀를 내밀고 우유병을 빠는 특이한 버릇이 있었다 . 이로 인해 빠는 동작이 원활하지 못해서 젖병 꼭지를 구멍이 큰 것으로 바꿔 주어야만 했다 . 때문에 사레가 더 자주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. 빨대는 사용하질 못햇지만 우유병은 돌 무렵부터는 기대어 앉혀 놓으면 스스로 손으로 쥐고 먹을 수 있었다 . 네 살까지는 이렇게 스스로 젖병을 쥐고 빠는 것이 가능했는데 그 이후 경련이 심해지면서 빠는 기능이 사라져버렸다 . (이때부터는 빨기보다는 주로 물어뜯기가 일쑤였기 때문에 젖병 꼭지가 아예 동강이 날 때가 많았다 )

우유도 처음에는 찬 우유를 거부했지만 점차로 찬 것만을 먹게 되었고 더운 음료나 우유는 입도 대질 않으려 했다 . 음식은 늘 유동식과 반 유동식의 형태로 먹었는데 조금이라도 씹어 먹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를 땐 가차없이 거부해 버렸다 . 사춘기가 되면서 달라졌지만 야채는 씹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인지 좀처럼 가까워지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. (물론 고기도 씹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으니 좋아할 이유가 만무했다 )

잘 씹지 못하는 원인 중에는 아이의 신체적인 구조 탓도 있었던 것 같다 .

은비는 아래 턱과 위의 턱의 교합이 맞지 않았다 . 정상적이라면 윗니가 아랫니를 덮고 있어야 하지만 은비의 경우는 아래 턱이 앞으로 튀어 나와있었기 때문에 입을 다물었을 경우엔 윗니와 아랫니가 나란한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. 이 때문에 특히 앞니로 음식을 절단해서 먹어야 하는 동작은 아주 미숙하거나 거의 하지 못했다 .

항상 자신이 먹었던 것만 먹으려 하고 여러 종류의 음식을 골고루 먹기보다는 한 두 가지만을 집중적으로 선호하는 아이의 행동은 종종 자폐아와 같은 모습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. 굶기면 이런 습관들이 고쳐질 수 있다고 굶겨보는 방법도 권유를 받았었는데 하루를 굶어도 그다지 먹으려 하지 않았던 아이의 고집을 꺾진 못했었다 . 전엔 먹는 것 자체에 그다지 흥미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에게 동기가 유발될 수 있는 강화제를 찾기가 참 힘들었다 . (자신이 좋아하는 몇 개의 음식에는 엄청난 집중력을 보였다 . 이 때는 거의 씹지도 않은 채 급하게 먹어댔기 때문에 종종 캑캑거리며 토하곤 했다 . 그러나 이때도 좋아하는 음식을 강화제로 사용할 경우 차라리 거부하고 먹지 않는 고집을 부렸다 )

최근 이 삼 년 사이 (사춘기가 시작된 이후 )에 아이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. 먹는 것에 대한 전반적인 흥미가 생겨난 것이 첫 번째이고 (그 전에도 흥미라면 항상 있어 왔지만 전반적인 것에 대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아주 제한적인 것뿐이었다 ) 어떤 음식이든 맛을 음미할 줄 알게 된 것이 두 번째이다 . 때문에 전엔 입도 대지 않았던 야채 종류에서부터 고기나 과일 등 비교적 골고루 음식을 먹을 줄 알게 되었다 . 아이를 데리고 여행이라도 가려면 먼저 아이 먹을 것은 항상 따로 준비해서 싸 들고 다녀야만 하는 것이 준비 일과 중 하나였는데 이제는 같이 식당에 앉아서 먹어도 될 만큼 먹는 것에 대한 적응력이 좋아진 것 같다 . (그래서 더 조심스럽다 . 지금은 뚱뚱하지는 않지만 한동안은 정말 비만이었으니까 )

은비는 지금도 우유를 마시지 않는다 .

자기의 선호도와는 상관없이 우유를 먹으면 꼭 설사를 하던지 소화 장애를 보이곤 한다 . 비교적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그다지 과자를 좋아하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. 음료 (물 , 포카리스웨트 , 두유 , 콜라 )는 비교적 많이 마시는 편인데 아이가 복용하고 있는 경기 약 중 오르필의 경우는 자주 갈증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.

은비는 씹지를 않아서 치아가 금방 상할 것을 염려해서 일찍부터 치아 관리에 들어갔다 . 어금니의 경우는 코팅을 입히는 실런트 치료를 , 그리고 나머지 치아는 불소를 바르는 방법으로 치아가 상하는 시기를 조금이라도 늦춰보려 한 것이다 .

특히 영구치가 나오는 시기에는 더 적극적으로 예방 치료를 받았는데 오히려 유치보다 영구치가 처음부터 부실한 상태로 나오는 바람에 크게 실효를 거두지는 못했다 . 유치였을 때는 비교적 치열도 가지런하고 치아의 상태도 그만한 편이었는데 다른 아이들보다도 훨씬 늦게 나오기 시작한 영구치의 경우는 (유치의 경우도 첫니가 13개월이 지나서 나왔기 때문에 엄청 늦은 편이었다 . 그런데 영구치는 무려 열한 살이 넘어서 앞니가 나오기 시작했다 ) 오히려 듬성듬성 자리를 잡으면서 뻐드렁니가 되었다 .(아래 송곳니의 경우는 지금까지 나오지 않았는데 앞으로도 나오지 않고 그냥 잇몸 속에 있을 걸로 추정하고 있다 )

치아는 영양이 부실해서 상하기 쉬운 상태로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에 좀 더 세심하게 관리해 주지 않으면 오래지 않아 쉬이 상하게 될 거라고 했었다 . 따라서 주기적으로 방문해서 치아를 관리했다 . 혹시라도 모르는 사이에 치아가 상해버리면 신경 치료라도 받게 될 것이 염려스러웠던 까닭이었다 .

치과의 경우 은비는 지금도 소아치과를 다닌다 . 평상시에도 잘 다물어지지 않고 항상 벌리고 다니는 큰 입은 치료 때만 되면 꽉 다문 채로 벌리려 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 치과에서 치료를 받기는 매우 힘들었다 . 더구나 억지로 입을 벌렸다가는 물리기 십상이어서 아이를 묶고 입을 벌릴 수 있는 장비를 갖춘 병원이라야 치료가 가능했다 . 그래도 지금은 소아 치과가 많이 생겼고 복지관마다 치과 진료를 봉사 활동으로 받을 수 있는 곳이 있으며 서초구에 있는 서초보건소의 경우도 장애인을 위한 치과 치료 시설을 갖추고 있다 . (이런 곳에선 아이들의 치료를 위한 장비 시설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치료가 가능하다 )

아이들도 그렇고 부모들에게도 아이의 장애를 이해해주는 곳에서 치료를 받아야 좀 더 원활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다 . 일반 개인 병원의 경우는 치과만이 아니라 다른 질환으로 찾아 갔을 경우에도 아이를 보고 난색을 보이는 병원이 꽤 있었기 때문에 병원도 비교적 우리 아이들에게 호의적이고 이해심이 있는 한 군데를 지정해서 주로 이용해 왔다 . (소아과 이비인후과 피부과 안과 등 )