어린 시절부터 잔병 치레를 자주 했던 은비는 폐렴에 걸린 것도 다반사여서 자주 X-RAY 촬영을 해야만 했다 . 일곱 살 무렵 X-RAY 촬영 시 척추 뼈가 아주 작은 변화이긴 했지만 약간 휘어져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. 아이의 그 같은 조짐이 걱정이 돼서 휠체어를 구입 시에도 아이의 척추에 도움이 되는 휠체어를 구입하고 싶었다 . 그 당시에 은비가 사용하던 휠체어는 미국의 ‘Preston’사에서 나온 ‘Rover stroller’(Elementary Size)였다 . 어린 시절 은비는 뻗치는 증상이 심해서 일반 유모차에 앉혀 놓으면 그대로 미끄러졌다 . 때문에 아이가 미끄러지지 않고 편안하고 안전하게 앉아있을 수 있는 의자나 유모차가 절실했는데 그 때 알게 된 것이 ‘Feeder Seat’였다 . ‘Rover stroller’는 ‘Feeder Seat’를 좀 더 발전된 형태로 개조시킨 ‘Carrie Seat’를 바퀴를 끼워 유모차 형태로 만든 휠체어였다 . 그 당시에는 경직이 심한 아이들을 태울 수 있는 어떤 대안도 없었기 때문에 카다록에서 이 제품을 처음 보았을 때는 중고차 한 대 값을 맞먹는 고가에도 불구하고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. 네 살 무렵부터 은비는 이 휠체어를 사용하였는데 처음 구입했을 당시에는 생각만큼 아이가 편안해 하지는 않았었다 . 그때만해도 구입한 휠체어에 비해서 아이가 작았기 때문에 사이즈가 맞지 않았던 까닭도 있었던 것 같다 .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아이가 성장하자 점차로 사용량이 빈번해지면서 무척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. 이 휠체어가 작아지면서 새롭게 휠체어를 구입해야만 하는 시기에 은비의 척추 측만을 알게 되었다 . 조금이라도 진행속도를 늦추고 수술까지 가는 최악의 경우를 막기 위해서도 은비에게 적합한 의자와 휠체어의 구입이 절실해졌다 . ‘SIREX’라는 복지 용품 전시회도 참석해보고 여기저기 수소문도 해보았지만 별달리 정보를 들을 수는 없었다 . 그 때 은비를 담당하시던 선생님도 일반 휠체어보다는 기존에 사용하던 ‘Rover Stroller’가 더 나을 것이라는 소견도 내주셨기 때문에 다시 전보다 좀 더 큰 ‘Rover Stroller’(Junior Size)를 구입하게 되었다 .

그리고 이 무렵부터 아이는 치료 방법을 보바스 치료법에서 다시 전의 보이타 치료로 바꾸게 되었다 . 은비가 9살 (만 7년 11개월 ) 되던 해의 일이었다 . 척추 측만에는 보바스보다 보이타 치료법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 선생님의 소견이셨다 . 그 사이 보이타 치료법도 전처럼 강제적으로 아이를 억압하는 형태가 아닌 좀 더 아이가 자유롭게 치료에 임할 수 있게끔 부드러운 터치로 바뀌어져 있었다 . 하지만 은비는 늘 자신의 몸에 누군가가 손을 대는 것에 대해 심한 거부감이 있었기 때문에 적응이 쉽지는 않았다 . 치료 시간 동안 아이가 적응하는 시간을 제외한다면 실제로 치료에 적응되서 제대로 임하는 시간이 짧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큰 변화를 느낄 수는 없었던 것 같다 . 더구나 주로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치료하다가 은비와 같이 크고 힘이 장사인 아이를 치료하기에는 조금 무리한 면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. 8개월 정도 이 치료를 받다가 조급한 마음에 다시 척추 측만과 연관되어 좋다는 치료법을 찾아보게 되었는데 그 때 알게 된 것이 카이로프레틱 (Chiropractic:척추 교정 )이었다 .

그 방면에 전문가를 알게 돼서 다시 아이의 치료를 카이로프레틱으로 바꾸게 되었다 . 그러나 이 역시 아이에게 접근하기는 쉽지 않았다 .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를 정확한 동작으로 맞추기를 시도해야 하는 치료법은 어쩌면 처음부터 아이에게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. 더구나 치료 선생님 말씀도 우리 아이들은 척추가 문제가 아니라 뇌에서 전달되는 정보 자체가 문제이기 때문에 뇌의 구조나 뼈가 어긋나져 있는 부분의 교정이 필요한데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그와 같은 치료를 할 수 있는 치료사가 없다는 것이었다 . 몇 달 간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미련을 포기하지 못하다가 끝내는 이 치료법 역시 접을 수밖에 없었다 .

결국은 다시 처음 그 자리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는데 그 사이에 아이의 척추는 조금 더 나빠져 있었다 . 더구나 아이가 사용하고 있던 Rover Stroller도 처음만큼 편하지 않았고 아인 앉은 자세에서 자주 기울어져 있었다 . 차라리 똑바로 앉아 있을 수 있는 일반 휠체어가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. 그 즈음 은비는 특수 유치원을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때로는 앉아서 개별 교육도 받곤 했는데 비스듬히 앉게 되는 Rover Stroller보다는 바로 앉을 수 있는 휠체어가 더 유용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.

척추에 대해선 주기적으로 검사를 하면서 계속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. 만일 그 때 은비가 장애아가 아니었다면 어떤 급구 처방을 요했을 터였지만 신체적으로나 지적으로나 장애가 심한 아이에게 아이의 움직임을 제한할 수 있는 보조기 요법이 그리 효과적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 진료를 보신 선생님의 판단이셨던 것 같다 .

은비는 열한 살에 뒤늦게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또 다시 척추가 나빠지는 계기가 되었다 . 은비는 체격에 있어서는 키가 큰 아빠를 닮은 탓인지 훤칠한 편이었다 . 때문에 7-8살의 체형에 맞춰져 있는 학교의 책상이나 의자 모두가 아이에게는 작은 편이었다 . 보통 2과정 -은비가 다니는 학교는 지체 아이들과 정신지체 아이들이 모두 다닐 수 있었다 . 따라서 교육도 2분화 되어서 실시가 되었는데 지체 반 아이들의 교과 수업은 1과정 , 정신지체 반 아이들의 교과 수업은 2과정이라고 불렀다 - 수업은 둥근 테이블에 모여 앉아 그룹 형태로 이루어졌는데 이 때문에 개인의 특성에 맞춰 개별 책상과 의자를 갖게 되면 그룹에서 이탈되는 느낌을 주어서 아이만 따로 앉게 되는 단점이 있었다 . 함께 배우고 따라 하는 방식으로 단체 생활을 익혀나가는 교육의 특성상 공동 참여는 중요한 문제였으므로 은비만을 따로 앉히는 것은 바람직하지가 못했다 . 나름대로 늘 아이의 자세 때문에 신경을 쓰긴 했지만 수업 시간을 내내 좋지 않은 자세로 비스듬히 있는 아이를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았다 . 안 좋은 자세 탓인지 혹은 아이가 성장기에 접어든 탓인지는 몰라도 학교에 들어간 즈음부터 시작해서 은비의 척추는 급속도로 나빠졌다 . 열세 살 무렵엔 눈에 띌 정도로 휜 상태가 뚜렷해졌는데 양쪽 어깨의 높이가 이 무렵부터는 차이가 확연해서 왼쪽으로 기울어져 가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. 아이도 쉽게 피곤해하고 수업만 끝나면 기진맥진한 표정이 역력했다 . 결국 아이는 열네 살이 되던 해에 수술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판정을 받게 되었다 . (만 12년 6개월 ) 이 때 아이의 기울어진 각도는 45도를 넘어서 50도 가까이 되었었다 .

그러나 당시의 척추 수술은 꼭 해야만 될 상황이 아니면 피하고 싶을 만큼 그 예후를 보장 받기가 힘들었다 . 수술 자체가 그리 보편화되지도 않았을뿐더러 결과조차도 낙관적이 아니라서 정말 생명에만 지장이 없다면 피하고 싶은 심정이 절실했다 . 더구나 은비의 경우는 척추 수술도 문제였지만 척추 수술에 앞서 다리 수술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병원 측의 진단이었다 . 은비의 다리는 왼쪽 고관절이 아탈구 현상을 보였고 양쪽 무릎은 구부러진 채로 펴지지 않았으며 발의 중심을 안쪽으로 실은 상태로 보행 연습을 하다 보니 양 발바닥의 아치는 없어진 상태였다 . (그렇다고 치료를 등한시한 것도 아니었다 ) 발의 형태도 엄지 발가락의 경우 바깥으로 돌아가 있었다 . 이런 상태로는 척추 수술을 하여도 지지 기반이 약해서 다시 휘어지게 된다는 것이 수술을 담당할 선생님의 소견이었다 . 다리를 발목 수술부터 고관절 수술까지 하고 난 후에 다시 척추 수술을 해야 할 것 같으면 아이의 체력으로 감당이나 될 법 한지 정말 자신이 없었다 . 아무리 생각해봐도 무리라는 결론밖에 내릴 수가 없었다 . 답답해서 찾아갔던 몇몇 병원조차도 역시 힘든 수술이 될 것 같다는 결론 외에는 별다른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.

아이의 수술을 대기시켜 놓은 상태에서 다시금 전처럼 아이에게 맞는 의자와 휠체어를 찾는 일이 절실해졌다 . 될 수 있으면 그렇게 해서라도 수술 시기를 조금이라도 늦추어보고 싶은 심정으로 찾게 된 것이다 . 우연히도 서로 다른 두 곳으로부터 ‘공방 오픈마인드 ’라는 곳이 바로 그런 맞춤의자와 휠체어를 제작하는 곳이라는 소개를 받게 되었다 . 그곳의 위치를 알고 있다는 분을 졸라서 경기도 의왕시에 있던 공방을 처음 방문한 것이 98년 3월이었다 .

처음 방문한 공방은 비닐하우스 안에 자리잡은 조그만 영세 가내수공업 형태의 작업장이었다 . 일본에서 공부하고 그 곳 공방에서 몇 년간을 배우고 오셨다는 김미현 선생님을 중심으로 몇몇 관심 있는 사제들이 모여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. 환경은 열악했지만 작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열기가 느껴져서 왠지 호감이 갔다 . 그곳의 작업 공정은 쿠션 성형이라는 독특한 과정을 거쳐서 제품이 만들어 졌는데 기존의 방식과는 아주 차별되는 특별한 기술력이 필요한 것 같았다 . 처음 그 곳을 방문했을 때는 병원에서 써주신 의사 선생님의 소견서만이 유일한 신임장이었다 . 때문에 김미현 선생님이 척추와 관련해서 아이의 상태에 대해 피력하신 소견들을 귀담아 듣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. 하지만 제작 과정을 지켜보고 그 까다롭고 복잡한 공정을 거쳐서 제품이 완성이 돼서 그것을 사용하는 아이가 전과는 다르게 매우 편안해하는 것을 보면서 공방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게 되었다 . 지금까지 목마르게 찾아 다니던 아이에게 맞는 맞춤형 의자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. 그때부터는 별다른 계획이나 혹은 일정이 없더라도 일부러 일정을 만들어가며 공방을 방문하게 되었다 . 단지 만드는 것을 지켜보거나 혹은 김선생님의 복지 전반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기존의 선입관이나 고정관념들이 많이 깨우쳐짐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기 때문이다 . 김선생님이 바라는 장애 아이들을 위한 생활원조기기 (Technical Aids)의 보급을 위해서도 이런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장애아를 둔 부모로서 간절한 바램이기도 했다 . 그러나 국가 차원의 지원도 전무하고 이 일에 참여하는 사람도 워낙 극소수다 보니 제작 기간도 길고 제품의 재료를 대부분 일본에서 수입해서 사용하는 까닭에 자연 제품의 단가는 고가일 수밖에 없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.

은비의 척추 측만을 늘 안타깝게 지켜봐 주시던 선생님은 99년 가을에 제 1회 공방 오픈마인드 컨퍼런스 (Conferounce)차 한국을 방문하신 가와구찌 (川口幸義 ) 선생님께 은비의 진료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주셨다 . 가와구찌 선생님은 일본 나가사키현의 이사하야 시에 있는 정지요육원 (整肢療育園 )의 원장님이시기도 했다 . 얼핏 요육원의 원장님이라서 척추 수술에 대해 잘 아실까 하는 선입견은 선생님을 만나면서 여지없이 깨어졌다 . 그곳에서 정형외과와 재활을 담당하신다는 선생님은 은비의 X-ray 필름을 살펴보시며 은비가 그 이전에 진료를 받았던 병원의 선생님들과는 다른 견해를 피력하셨다 . 즉 은비의 척추는 측만이 많이 진행되기는 했지만 -그 당시의 은비의 척추는 64도 가량 되었다 - 그렇게 큰 수술을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다 . 은비의 척추 측만은 비교적 심장 아래 부분에서부터 진행되었기 때문에 폐가 눌릴 만큼의 당장의 위험 요소는 없다는 것이 선생님의 지적이셨다 . 그때까지의 일본의 척추 수술도 시술 후에 효과적인 측면보다는 부작용이 많았다는 말씀도 있으셨다 . 때문에 광범위한 수술보다는 측만을 유발시키고 있는 장요근과 몇몇 근육을 잡아준다면 괜찮을 것 같다는 말씀도 하셨다 . 불쑥 찾아 든 외국인 환자를 전연 귀찮아하는 기색 하나 없이 차근차근 살펴봐주시는 선생님은 분명 기존의 의사 선생님들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. 단 한 번만 뵙고도 아이를 맡겨도 괜찮겠다는 신뢰감이 절로 생겨났다 . 우리나라의 병원과는 다르게 수술보다는 수술 후의 재활이 더 중요하다는 선생님의 말씀은 더욱 더 절실하게 가슴에 와 닿는 바가 있었다 .

수술과 재활 치료 기간을 통틀어서 2개월 반 정도가 걸릴 것 같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일본 행을 결심하고도 그것을 실행으로 옮기는데는 5년의 시간이 더 걸렸다 . 개인적인 집안 일부터 건강과 연루된 여러 가지 사정이 그 사이에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수술을 받을 곳이 국내가 아닌 낯선 외국이라는 사실도 쉽게 결심을 굳힐 수 없었던 요인이기도 했다 . 그래도 국내라면 힘든 상황에서도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지만 아무도 아는 사람도 없는 외국으로 가서 언어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곳에서 수술까지 받는다는 것은 정말 마음의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. 그 사이 일본에서는 수술 방법이 더 많이 발전해서 전의 은비와 같은 케이스의 수술이라면 2박 3일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소식도 들렸다 . 은비의 척추는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. 이젠 정말 어찌 할 수 없을 만큼 기울어져서 무너져가는 모습으로 비춰질 정도였다 . 공방에서 맞춘 의자의 등판도 은비의 척추가 휘어지면 질수록 두꺼워져만 갔다 . 아인 점점 더 앉아있는 것에 대해서 피곤해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. 옷을 입히면 옆으로 휘어진 척추로 인한 체형의 변화 때문에 항상 헐렁하게 입어야만 했다 . 때로는 옆구리나 허벅지를 만져대서 그것이 통증을 호소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늘 걱정스러웠다 .

2003 년 7월에 은비의 상태를 진료받기 위해 가와구찌 선생님이 계시는 일본의 이사하야로 건너갔다 . 이때 김미현 선생님과 가족 분들이 동행해 주셔서 낯선 곳이지만 든든한 기분이었다 . 그 사이 병원도 ‘정지요육원 ’에서 ‘어린이의료복지센타 (현재 나가사키 현립 어린이의료복지센타 )’로 바뀌어져 있었다 . 가와구찌 선생님은 요육원 원장님에서 센터의 소장님으로 직함이 바뀌셨고 규모도 전보다 더 확대되었다고 했다 . 병원을 찾아간 시각이 5시를 넘긴 때라 거의 진료도 끝났으려니 했는데 아직도 기다리는 환자가 많이 있었다 . 다른 선생님들이 한 분 두 분 진료를 끝내고 나오시는 데도 가와구찌 선생님 방에선 아직도 진료 중이었다 . 밖에서 두 시간 가까이 기다려서야 방으로 들어오라는 간호사의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. 7시가 다 되가는 시각이었다 . 기다림에 지쳐서 짜증 섞인 표정으로 들어가보니 여전히 소박하고 단정하신 모습으로 전보다 좀 더 여위신 선생님이 처음 만났을 때와 다름없이 반갑게 맞아주시는 모습에 새삼스럽게 가슴이 뭉클해졌다 . 다른 선생님들도 그렇지만 이렇게 진료가 하루 종일 있는 날에는 점심을 거르는 건 예사라고 김미현 선생님이 말씀해 주셨다 . 선생님도 전에 이곳 공방에서 일하셨을 때는 아이들의 의자와 용품들을 맞추고 납품하기 위해 가와구찌 선생님과 다른 선생님들의 진료 시간에 맞춰 이곳을 자주 방문하셨다고 한다 . 가와구찌 선생님 또한 그때까지 점심 식사도 거르신 상태로 환자를 보시는 중이셨다 . 늦은 시간에 몹시 피곤하실 텐데도 전연 피곤함을 내비치는 기색도 없이 맞아주시고 주의 깊게 아이의 상태를 살펴봐주시는 선생님을 뵈니 새삼 이곳까지 오기를 잘했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.

은비의 상태는 예상했던 대로 전보다 엄청 많이 나빠져서 심각해 보였다 . 선생님의 의견도 이제는 수술 밖에는 교정 방법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. 은비의 척추의 휘어진 각도는 100도에서 1도가 모자라는 99도라고 했다 . 수술 방법과 가능에 대해서 묻자 이 병원에서 척추 수술을 담당하시는 니노미야 (二宮義和 ) 선생님이 합석하셨는데 니노미야 선생님의 말씀으로도 은비에겐 수술 만이 유일한 치료법이라고 했다 . 수술 방법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으며 은비에게 맞는 수술법으로는 휜 상태로 보아 텍사스의 달라스에 있는 Scottish-Rite Hospital 이라는 장애 아동 전문 병원에서 개발된 나사 고정요법으로 수술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. 만일 한국에서 이와 같은 방법으로 수술하는 병원이 있다면 굳이 낯선 이곳보다는 더 낫지 않겠느냐는 염려까지 곁들여서 혹 한국에서 이와 같은 방법으로 수술하는 선생님이 계신지도 알아봐 주시겠다는 호의까지 유감없이 보여주셨다 . 두 분의 수술에 대한 자세한 견해와 예후 그리고 재활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들을 소상하게 듣고 나온 시간은 8시 30분이 넘은 시각이었다 . 그때까지도 밖에선 아직 진료를 보지 못한 다음 환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. 1시간 30분 진료 ! 우리로선 상상할 수 없는 진료 시간이었다 . 진료 시간이 길어진 건 우리가 외국인이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. 누구라도 필요할 경우엔 긴 진료 시간이 소요되었는데 수술과 같은 중대한 결정을 앞둔 경우에는 환자나 보호자나 충분히 수술과 관련된 궁금한 사항들을 알아야 된다는 것이 가와구찌 선생님의 믿음이기도 하셨다 . 여기서 일본인들은 설혹 앞의 환자가 늦어져서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진다 하더라도 그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여기에 불평을 하거나 불만을 터뜨리지 않는단다 . 우린 차례가 될 때까지 기다렸던 것도 온갖 짜증과 불평을 터뜨렸는데 새삼 이들 보기가 부끄러워졌다 .

서울로 돌아와서 은비가 한국에서 수술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있을까 돌아다녀 봤지만 전보다 훨씬 상태가 나빠진 데다가 중증의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를 어느 병원도 선뜻 나서주지는 않았다 . 모두들 결과가 그리 낙관적이지는 않다는 부연 설명까지 하면서 그래도 꼭 해야겠다는 결심이 서면 마지못해 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.

물론 아이의 상태로 봐선 해주어야 하는 것이 당연했지만 워낙 위험 요소가 너무 많다는 것이 거부 이유였다 . 같은 수술 방법일 경우 이곳에서 받아야 하는가가 문제가 아니라 위험 요인이 많아 부담이 큰 환자는 수술을 꺼리는 병원의 풍토가 더 큰 문제였다 . 한국에서 먼저 척추 수술을 한 은비의 학교 친구들의 예후만 보더라도 그리 만족스러운 상태가 아니어서 은비와 같이 심한 상태에선 과연 어느 정도 회복이 가능한 것인지도 예측하기가 힘들었다 . 대안은 없는 것 같았다 . 결국 아이는 2004년 2월에 척추 수술을 위해서 일본으로 건너갔다 .

일본으로 가서 니노미야 선생님을 뵙자 선생님은 그 사이 은비의 수술 방법이 바뀌었음을 알려주었다 . 은비의 움직임을 살펴보니 아이의 움직임이 대단히 활달해서 수술 후에도 은비의 과도한 움직임에 대해서 좀 더 안전한 테이핑 요법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. 전처럼 두 개의 티탄을 뼈 위에 고정시키고 그 위를 나사로 단단히 조이는 방법이 아니라 유연성을 줄 수 있도록 테이프로 감아서 고정시키는 방법이었는데 이렇게 되면 아이가 설혹 움직이더라도 부러질 염려가 없이 안전하다고 했다 . 물론 나사보다 고정력은 다소 떨어질 것이다 . 그러나 수술 후에 안전을 보장받으려면 아무래도 이 방법이 나을 것 같다는 것이 그 곳 선생님들의 견해셨다 . 그러나 만일 보호자가 전의 방법을 원한다면 그 방법으로 수술도 가능하다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. 우리가 이곳으로 온 것은 전적으로 이곳의 선생님을 신뢰하는 그 믿음 하나로 온 것이라는 입장을 밝혀드리고 선생님 소신껏 옳다고 생각되는 방법으로 수술을 부탁한다는 부모로서의 소견도 전해드렸다 . (수술이 끝난 후 학회에 은비의 사례를 보고하였을 때 그곳의 선생님 모두가 테이프로 고정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은 정말 잘 한 일이었다고 했단다 . 만일 나사 고정법으로 했다면 은비의 경우는 100% 부러졌을 거라는 것이다 )

2004 년 3 월 8 일, 드디어 은비는 일본의 나가사키현립어린이의료복지센터 (장애아 전문 병원 )에서 수술을 받게 되었다 . 수술실로 향한 시간이 아침 9시 , 그곳의 대기실에서 함께 아이와 있다가 수술실에 들어간 것은 10 시 가 넘은 시간 , 그곳에서 다시 준비 과정을 거쳐 수술이 시작되었겠지만 아이가 수술을 마치고 다시 나온 시각은 그 다음 날인 9일 새벽 2시 반 정도 , 전후 수술 준비 시간과 마취에서 깨어나는 시간을 제하더라도 13시간 가까이 소요된 수술 시간이 말해주듯 대단히 큰 수술이었다 . 그렇게 오랜 시간을 잘 버텨준 아이도 고맙고 그 큰 수술을 감행해주신 선생님도 너무 고마웠다 . 은비는 그렇게 다시 태어났다 . 낯선 이국 땅에서 .

그 후로의 회복 과정은 그 곳 선생님들의 예상을 뛰어 넘어 경이감을 줄 만큼 놀라운 속도로 빠르게 진행되었다 . 아이의 그와 같은 변화는 오랜 의사 생활을 통해서 좀처럼 당황하지 않는 선생님들께도 연구 대상이 될 만 했다 . 언제 수술한 환자인가 싶게 극성을 떨며 움직여대는 아이를 보면 흐뭇하기도 했지만 내심 걱정되기는 선생님이나 우리나 마찬가지였다 . 두 달 가량의 수술 회복 재활 훈련 과정을 통해서 아이의 상태는 나날이 나아져 갔고 애초에 우리의 목표이기도 했던 수술 이전에 아이가 움직이던 만큼의 상태로 회복되는 것도 그리 불가능한 일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.

아이의 상태도 그렇고 움직임에 있어서도 다른 장애 아이들과 다른 점이 많았던 때문에 어느 정도까지는 아이의 변화를 지켜볼 필요성이 있었다 . 수술 후 석 달이 지나서 은비의 하드코르셋 (하드 척추 보조기 )을 풀고 소프트 보조기로 바뀌는 시점에 다시 일본을 찾았다 . 은비의 척추는 큰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는 듯이 보였다 . 수술 후 뼈가 완전히 굳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석 달 이후부터 3주 동안 강도 높은 훈련을 받으며 아이의 상태도 점차로 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 가고 있었다 . 치료하면서 은비는 수술 이전 오랫동안 보행을 시키지 않은데다 수술 후 더욱 짧아진 다리의 근육 때문에 무릎을 펴고 치료를 받는 동작을 무척 힘들어 했다 . 때문에 앞으로 아이가 살아가는데 다소간 불편함을 덜어주려면 굳어진 무릎 뒤의 근육은 늘려주는 것이 낫겠다는 것이 선생님들의 견해셨다 . 아직 척추 수술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으므로 당분 간 수술은 무리라고 하셨지만 아이의 체력 상태로 보아선 하반기쯤이면 근육을 늘려주는 간단한 수술은 해주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의견이셨다 . 이때쯤엔 아이의 상태를 지켜보시며 또 한편으로는 은비의 특이한 행동과 움직임들을 주의 깊게 연구하셨던 것 같다 .